죽음, 추모의 정서에 대하여
죽음, 추모의 정서에 대하여 _ 알도 바니니
죽음
– 우드랜드 공원묘지의 새 화장장 _ 요한 쎌싱 아르시텍트콘뚜루
– 링스테드 공동 화장장 _ 헤닝 라슨 아키텍츠
– 아미앵 화장장 _ 플랜01
– 새로운 풍경을 만드는 힌두 화장장 _ DA 스튜디오스
– 이스라엘 묘지 예배당 _ 론 쉔킨 스튜디오
– 사야마 숲 예배당 _ 히로시 나카무라 & NAP
추모
– 담담하게 기록한 역사, 리브잘트 기념관 _ 루디 휘치오티 + 파씰락 호크 악쉬텍트
– 폴란드 마을의 희생자를 위한 추모관 _ 니지오 디자인 인터내셔널
– 화합과 평화를 기념하는 고리 _ 에이전스 디악쉬텍쳐 필립 프로스트
– 볼로냐 학살 유대인 추모비 _ SET 아키텍츠
– 순직 경찰관을 위한 추모비 _ 회벨러 + 윤 아키텍쳐
– 이시노마키의 동일본대지진 희생자 추모비 _ 고이시카와 아키텍츠
– 자연에서 되찾는 희망, 우퇴야 섬의 추모비 _ 3RW 아키텍터
C3는 전세계에서 그 품격과 품질을 인정받고있는 탑클라스의 프레미엄 잡지입니다. 한국 건축잡지로는 유일하게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을 비롯해 전세계 글로벌 도시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다렌 대학과 라이센스 계약을 맺어 중국어판이 배포되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판매가 시작된 중국어판은 중국 전역과 대만 홍콩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C3 381호 (2016년 5/10)
죽음, 추모의 정서에 대하여
죽음, 추모의 정서에 대하여 _ 알도 바니니
태초부터 인류는 죽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며, 사후 세계의 존재를 의식하며 살아왔다. 인간은 죽어도 영혼으로 남아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으며 죽음을 신성으로 여겨온 것이다. 이와 같은 신념은 영혼을 기리는 의식 행위로 이어지고, 무덤과 기념비와 같은 상징물을 만들어냈다. 그 기원에는 죽은 자가 저승으로 향하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돌지도 모른다는 산 사람의 두려움이 담겨있다.
C3 345호에서 다루었던 죽음과 추모의 건축 특집에서 넬손 모타는 “오직 무덤과 기념관만이 예술이 될 수 있다. 기능에 충실한 것들은 모두 예술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라는 아돌프 로스의 말을 인용했다.
건축에서 기능을 완전히 배제하면 오직 정서와 기억만이 남는다. 그리고 이는 신성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배경이 된다. 이 영역에 속하는 죽음을 위한 건축, 즉 묘지나 화장터는 단지 시신을 안치하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 인간의 정서를 동반하는 장소다.
신성은 형체를 초월한 이면 세계에 초점을 둔 형이상학에서 근대를 거쳐 인본주의로 거듭났다. 더는 공포를 쫓아내는 데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느끼는 특별한 감정과 기억에 집중한다. 또한,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은 잔재로 남아 살아있는 사람들 간의 연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같은 목적을 갖고 모여든 사람들의 집단 가치는 건축을 통해 표출된다.
이번 호에서 다룬 사례들은 건축으로 승화시킨 인간의 비통한 감정을 잘 보여준다. 특정 종교나 어떠한 추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관습적 의미들은 모두 거부한다. 간소하고 절제된 건축적 어휘로, 차분하고 경의로 가득한 침묵의 공간을 그려낸다.
C3는 전세계에서 그 품격과 품질을 인정받고있는 탑클라스의 프레미엄 잡지입니다. 한국 건축잡지로는 유일하게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을 비롯해 전세계 글로벌 도시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다렌 대학과 라이센스 계약을 맺어 중국어판이 배포되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판매가 시작된 중국어판은 중국 전역과 대만 홍콩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C3 381호 (2016년 5/10)
죽음, 추모의 정서에 대하여
죽음, 추모의 정서에 대하여 _ 알도 바니니
태초부터 인류는 죽음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며, 사후 세계의 존재를 의식하며 살아왔다. 인간은 죽어도 영혼으로 남아 어딘가에 살아있다고 믿으며 죽음을 신성으로 여겨온 것이다. 이와 같은 신념은 영혼을 기리는 의식 행위로 이어지고, 무덤과 기념비와 같은 상징물을 만들어냈다. 그 기원에는 죽은 자가 저승으로 향하지 못한 채 이승을 떠돌지도 모른다는 산 사람의 두려움이 담겨있다.
C3 345호에서 다루었던 죽음과 추모의 건축 특집에서 넬손 모타는 “오직 무덤과 기념관만이 예술이 될 수 있다. 기능에 충실한 것들은 모두 예술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라는 아돌프 로스의 말을 인용했다.
건축에서 기능을 완전히 배제하면 오직 정서와 기억만이 남는다. 그리고 이는 신성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배경이 된다. 이 영역에 속하는 죽음을 위한 건축, 즉 묘지나 화장터는 단지 시신을 안치하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 인간의 정서를 동반하는 장소다.
신성은 형체를 초월한 이면 세계에 초점을 둔 형이상학에서 근대를 거쳐 인본주의로 거듭났다. 더는 공포를 쫓아내는 데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느끼는 특별한 감정과 기억에 집중한다. 또한,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은 잔재로 남아 살아있는 사람들 간의 연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같은 목적을 갖고 모여든 사람들의 집단 가치는 건축을 통해 표출된다.
이번 호에서 다룬 사례들은 건축으로 승화시킨 인간의 비통한 감정을 잘 보여준다. 특정 종교나 어떠한 추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관습적 의미들은 모두 거부한다. 간소하고 절제된 건축적 어휘로, 차분하고 경의로 가득한 침묵의 공간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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